4월은 ‘과학의 달’, 이달 21일은 ‘과학의 날’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과학상상그리기, 로켓 날리기 등 체험 이벤트와 대중 과학강연,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과학의 의미를 공유하고 느껴보자는 취지겠지만 4월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과학은 잊혀지기 일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과학의 달을 맞아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에서 삶의 비전을 찾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들어보는 ‘사이언스 마이크’를 연재합니다. 과학자가 꿈인 고등학생부터 예비 과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 대학원생, 새롭게 연구자의 길에 접어든 신진 연구자, 유명 과학자의 희망과 좌절, 꿈과 삶을 들여다보고 ‘과학의 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봅니다.
18조 6000억 원. 작년 한 해 사교육에 든 비용이다. 학생 한 명 당 한 달 평균 23만 9000원을 사교육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은 지난 2월, 전국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사교육비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2013년 한 해 우리나라 학생 10명 중 7명은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교육을 받는 과목으로는 수학이 45.8%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영어가 44%로 그 뒤를 이었다. 사회와 과학 과목의 비율도 11.5%나 됐다. 과학의 달을 맞아 준비한 ‘사이언스 마이크’ 첫 인터뷰 대상으로 부천 정명고등학교 로봇 동아리 ‘STAR’를 찾았다. 로봇 공학자가 꿈인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로봇과는 관계없는 사교육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
“FLL에 나가려고 로봇 만드는 학원에 다닌다는데 정말인가요?” 11일 늦은 저녁, 경기 부천 정명고에서 만난 김수진 군(3학년)에게 대뜸 물어봤다.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기자의 질문에 김 군은 부정하지 않았다. FLL은 레고에서 생산하는 로봇 부품으로 로봇을 만들어 로봇의 기능을 겨루는 대회다. 이런 대회는 로봇을 좋아하는 청소년에게 커다란 동기부여다. 하지만 대회 수상을 위해 과외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사교육에 뿌리 깊게 길들여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실제로 사교육의 범위는 비단 학교의 교과 과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예체능, 취미교양’ 분야가 전체 사교육의 32.1%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과학 교구를 이용한 놀이도 포함된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과학이 이미 보편화돼버린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로봇 만들기 사교육이 무작정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돈을 들여 대회 입상을 위한 연습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시기 가장 공들여 키워야 할 ‘상상력’과 ‘창의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저도 로봇을 만들어 대회에 나가고 싶은데, 과외 받을 여유는 없고…. 그래서 학교에서 로봇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학교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잖아요.” 로봇 공학에 대한 아이들의 열정은 동아리 탄생을 가능케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아이들은 ‘공학과 로봇을 공부한다(Studying Technology And Robot)’는 말의 약자인 ‘STAR’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스펙만 중시하는 교육현장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연 것이다. 김 군이 로봇동아리를 만들 때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지금 동아리를 지도하는 김영주 교사다. 신동현(부천 정명고 3) 군도 김 교사의 추천으로 동아리에 처음 가입했다. 신 군은 “자동차 연구원이 되어 친환경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꿈인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현재 30명의 학생이 STAR에서 활동하고 있다. 로봇을 조립하는 기구부와 로봇의 기능을 지정하는 프로그램부로 구분된다. 각 부의 학생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 로봇에 대해 공부하고 실제로 만들어 본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얻은 수확은 생각보다 컸다. 올해 FLL대회에서 ‘저지어워드 로봇디자인’을 수상한 것. 동아리가 생긴 지 단 1년 만의 쾌거다. 사교육을 받은 팀과 겨루어 거둔 성과라 더 의미 있는 결과다. 하지만 STAR 활동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활동에 가장 어려움을 미치는 것은 바로 로봇의 가격. “로봇 한 대를 만드는 데 재료비만 70~80만 원이 들어요. 학생 입장에서 이 비용을 부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요. 또 FLL 같은 로봇경진대회도 참가비가 있어요. 학교가 주는 동아리 지원금에, 회비를 한 달에 2만 원 정도 모으지만 로봇을 만들기 위한 경비는 턱없이 부족하죠.” 비용은 아이들의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다. 동아리를 지도하는 김 교사의 고민도 같다. 김 교사는 경비 마련을 위해 YSC와 부천여성청소년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작년과 올해, 두 단체의 지원으로 STAR는 활동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꿈과 열정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학생들은 스스로 경비를 마련하는 방법을 찾았다. 작년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에 부스를 차린 것. 부스에서 로봇을 전시하고,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동아리 방도 필요하다. “아직 STAR에는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로봇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실 등 자리가 나는 곳을 찾아 옮겨 다녀야만 하거든요. 로봇 부품을 박스 몇 개에 섞어 둘 수밖에 없죠. 계속 이사 다니려면 짐을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 그래서 로봇을 만들려면 박스를 엎어서 부품 찾는 게 일이에요. 저희도 부품을 잘 정리하고 싶은데 아쉽죠.” 김 군은 지금 동아리 방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에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따로 공간을 내 주기는 쉽지 않다.
예산과 공간 부족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 로봇을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 동아리 회장인 신동혁(부천 정명고 2) 군이 이유를 말해줬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죠. 저는 나중에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어요.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해 저렴하면서도 기능이 뛰어난 로봇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차민석 군(부천 정명고 3)은 “지금까지 로봇을 다섯 개 정도 만들었다”며 “앞으로 더 많은 로봇을 만들어 로봇의 원리를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TAR는 로봇을 이용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주말이면 지역아동센터에 가 로봇을 보여주고 함께 로봇을 작동해 보는 것. 또 근처 중학교에 가서 함께 로봇을 만들기도 한다. 김 군은 “사람들이 로봇을 보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기쁘다”며 “로봇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도 과학을 하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군은 로봇을 이용한 과학문화 기획자를 꿈꾸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다 할 지원 없이 즐겁게 과학을 하는 ‘동지’를 찾는 것도 이들에겐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김 군은 지난해 8월 다른 학교의 로봇동아리와 부천연합동아리를 만들었다. 또 올해는 서울 마포고 등 12개 학교와 연합해 전국연합동아리를 결성했다. 로봇에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함께 로봇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동시에 든든한 동지”라며 “더 많은 로봇동아리가 이곳 전국연합동아리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 군에게서 대한민국 로봇 공학의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면 너무 허풍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