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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로의 회귀 열풍 레트로가 호명한 노스텔지어의 시대

세상에는 한 시대를 관장하는 주류문화가 있다. 그 주류문화가 매너리즘으로 흐르면 언제나 틈을 깨고 나오는 창조적인 문화도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21세기에 들어서서는 당대의 문화가 실종되었다. 오직 ‘레트로(retro)’ 열풍만이 휩쓸고 있다.

2012년 영화〈건축학개론〉, 드라마〈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의 방영 이후 90년대로의 회귀 열풍은 잦아들 줄을 모른다. 대중음악분야에서도 오래전부터 〈7080 음악회〉가 그 시절 음악인들을 불러들여 50년대 생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다.〈나는 가수다〉는 90년대의 음악인들을 복귀시키고 있다. 음악뿐만 아니다. 영화도 그렇고 인테리어도 그렇다. 카페의 테이블이나 의자, 소파 같은 인테리어 물품도 복고풍이 유행이다.

모 케이블채널에서 방영한 〈응답하라 1997〉은 후속편인 〈응답하라 1994〉까지 이어지며 90년대 신드롬을 일으켰다. 제공: tvN 응답하라 1997 홈페이지


이렇게 복고주의를 지향하는 하나의 유행 현상을‘레트로(retro)’라고 말한다. 레트로는‘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Retrospect’의 줄임말이다. Retro는 Pre의 반대 의미로 사용되어 오다가 음악과 패션, 디자인 등에서 빈번하게 사용된다. 레트로가 하나의 유행 현상이 되자 신조어로 명사화되었다. 의미상 빈티지(Vintage)와 비슷한 용어지만 빈티지가 단순히 오래되거나 낡은 사물을 의미하는 뜻이라면 레트로는 어떤 스타일을 가진 특정시대의 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레트로는 현재보다 앞선 과거의 문화트렌트를 의미하지만 1970년대나 1990년대처럼 특정 시대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게 되었다. 복고적 문화, 콘텐츠, 태도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대중들이 레트로 문화의 피드백에 빈번하게 빠져드는 이유는 흔히 시대가 변하는 속도감에 대한 반발이라고 한다. 사회와 문화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20년 주기로 복고문화가 유행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레트로가 유행하는 주기는 짧아진다.


대중음악 전반에 만연한 레트로 문화
가령 이 글을 읽는 당신이 5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70년대에 청년시절을 보냈다 생각해보자. 포크음악은 청년이었던 당신의 삶에 문화적 충격을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70년대 주류 대중음악과는 다른 진지함과 아름다운 멜로디, 포크기타의 울림에 당신과 당신 세대의 감수성은 떨렸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60년대 생이었고 80년대를 살았다면 포크음악의 매너리즘을 깨는 대학가요제의 신선함에 열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70년대 생이고 90년대를 청년기로 보냈다면 온통 발라드 일색이던 시절을 깨뜨린 서태지가 던진 파격과 다양한 힙합, 레이브 음악들을 추억하고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항상 시대를 대표하는 장르가 있고 그 시대를 깨뜨리는 아티스트가 나오고 새 시대를 선도하는 노래들이 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을 찾을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것도 새롭게 창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댄스음악을 작곡하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얘기겠지만 리믹스(remix)와 매쉽업(mash-up)으로 점철된 댄스음악에서 더 이상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의 창의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90년대 큰 인기를 구사했던 가수들을 다시 소환하여 새로운 경연의 장을 만들어 낸〈나는 가수다〉는 최근 시즌 3가 시작되었다. 제공: imbc 나는 가수다 홈페이지


몇 년 전부터 음악 프로그램은‘오늘’의 가수에게 전설의 명곡을 부를 것을 요구하고 ‘응답하라’의 감수성으로 지난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복고의 상업화에 대한 우려까지도 나온다. 복고만 있을 뿐 현재는 없다. 과거의 무한반복이다. 대중음악계의 이런 복고현상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계의 기형적인 생태계에 반발한 측면도 크다. 10대 20대 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아이돌 댄스음악에 대한 반작용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통에 반발해 발랄한 상상력으로 발전해왔던 대중문화의 종말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중문화상품은 이제 결코 끝까지 듣지 않는 박스 세트와 함께, 과거에 듣던 앨범을 충실히 재연하는 옛날 밴드의 비싼 공연입장권과 함께, 몇십 년째 공연 중인 유명 뮤지컬 몇 편으로 좁아진다.


영화관에서도 이어지는 레트로 행렬
영화관에 가면 달라질까? 영화관에서도 레트로의 행렬을 발견할 것이다.〈국제시장〉의 초대형 히트는 박정희 시대의 레트로 열풍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다들 고생하던 시대의 소품이 추억을 호명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기 보다는 리부트(reboot) 영화와 프리퀄(prequel) 영화가 대세를 이룬다. 지금 상태라면〈스타 트랙〉과〈배트맨〉의 프리퀄이 어디까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지 장담하기 어렵다. 새로운 걸작은 등장하지 않고 과거의 걸작들의 기원만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지나간 시대를 좇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숭배한 르네상스는 말할 것도 없고 팝의 역사를 다시 썼던 펑크도 처음엔 복고적 뿌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과거의 레트로가 복고를 통해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했다면, 오늘날의 레트로는 자신의 과거를 갉아먹을 뿐이다. 그 맥락은 무시된 채 단지 그 시대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콘텐츠는 끊임없이 재활용되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만연했던 20년 주기설의 경향성도 사라진 지 오래다. 심지어 2000년대가 지나기도 전에 2000년대가 과거의 유령으로 소환된다.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한 영화〈쎄시봉〉은 불후의 포크 명곡과 함께 떠나는 추억여행을 선사한다. 
제공: CJ E&M


지난 10년 사이 나온 노래 중에서 노스탤지어와 레트로 유행을 충족해줄 만큼 좋았던 음악은 얼마나 있었던가. 60년대 세대들에게 물어보자. 고인이 된 김광석의 목소리를 대신할 만한 가수나〈서른 즈음에〉의 노스탤지어를 일깨우는 노래가 지난 10년 사이에 있었던가?

비단 60년대 세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어느 세대나 그들이 살던 당대문화를 기표로 삼아 흘러간 시절을 추억한다. 대중문화는 세대의 공감을 불러오고 정서를 공유하게 하는 용광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의 문화적 기제들을 소환함으로써 마침내 그 시절 추억을 완벽하게 호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우리의 문화는 창조적인 신작이 없는 복고를 향해서만 순례하고 있다. 추억만 있을 뿐 새로운 문화는 오지 않는다.

21세기속의 대중은 새로움과 미래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문화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가슴은 허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 예술가들은 오늘날의 문화에 끝없이 반문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예술가들이 레트로 문화가 주류가 된 이 사회에 대해, 창조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는 창조적인 미래기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레트로가 주는 노스탤지어보다 새로움이 주는 설렘을 맛보고 싶다. 설렘을 주는 창의적인 콘텐츠가 얼마나 생산되는가가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척도라고 믿는다.




글 : 김평수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외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